[스타트업 스토리 #520] 위성은 가득 찼다, 지상은 여전히 맹목이었다
Source: Platum
위성 데이터를 지상의 언어로 바꾸는 사람들

리파이 공동창업자들. 펫치 운자로언 COO(사진 왼쪽), 콜라탓 카투사노 CEO(사진 오른쪽) / 사진=리파이
콜라탓 카투사노(Kolatat Katousano)가 처음 이 문제를 발견한 건 숫자에서였다. 현재 저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은 수만 개에 달하며, 중국만 해도 추가로 수만 개를 발사할 계획이다. 수십조 원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지상에서 그 데이터를 실제로 쓸 수 있는 정보로 전환하는 곳은 사실상 없었다.
싱가포르 출신의 콜라탓은 위성을 만드는 나라가 아닌 곳에서 자랐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질문이 보였다. 우주를 향한 경쟁이 격화될수록, 진짜 싸움은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문제는 더 많은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생성되는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처리하고,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공동 창업한 리파이(RIFFAI)는 위성과 AI 기술을 결합해 환경 변화와 핵심 인프라를 모니터링하는 회사다. 공동창업자이자 COO인 펫치 운자로언(Petch Ounjaroen)과 함께, 우주에서 올라오는 원시 데이터를 지상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정보로 바꾸는 일을 한다.
위성이 쏟아진다
“다음 단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해질까를 고민했습니다. 위성이 많아질수록 지상국도 더 필요해지지만, 지상국 구축은 비용이 매우 큽니다. 반면 데이터 분석과 처리 기술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시작할 수 있고, 훨씬 넓은 산업적 파급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정부 기관과 에너지·국방·환경 분야 조직들은 방대한 위성 원시 데이터가 쏟아지는데 이를 실시간으로 실행 가능한 인사이트로 전환할 도구가 없었다. 기존 솔루션들은 대부분 과거 데이터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국방 작전이나 에너지 공급 차질, 보안 모니터링처럼 시간이 생명인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리파이는 이 틈새를 겨냥해 위성 데이터를 위한 ‘인텔리전스 레이어(Intelligence Layer)’ 역할을 제공한다.

대시보드는 쏘지 않는다
콜라탓은 리파이를 ‘분석 플랫폼’이 아니라 ‘운영 인텔리전스’라고 강조한다. 그 차이는 현장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위성 데이터는 결국 원시 데이터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많은 이미지와 정보가 있어도, 이를 빠르게 분석하고 실행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지 못하면 현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군사 작전이 대표적이다. 기존 방식은 첫 공격 신호가 발생한 뒤에야 대응책을 고민한다. 리파이는 위성 관측과 AI 분석을 통해 사전에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수십 명의 엔지니어가 현장에 투입되고 서로 다른 결론이 담긴 보고서가 나오는 대신, 위성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태양광·풍력 설비의 최적 입지를 신속하게 도출한다.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정보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분석 플랫폼과 운영 인텔리전스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리파이는 이미 상용 단계에 진입했으며, 에너지와 국방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고객과 실질적인 계약을 체결 중이다. 초기에는 민간·환경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수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방 및 핵심 인프라 운영 영역으로 사업이 확장됐다.
규제 바깥에서 날다
리파이가 한국에 처음 관심을 가지면서 마주한 현실은 냉정했다. 한국은 지리공간 데이터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 상업적으로 접근 가능한 위성 해상도가 1.5 m 수준으로 제한되고, 일부 건물·핵심 인프라는 데이터에서 제외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0.2 m·0.1 m 해상도로 기술을 개발해온 회사가 처음부터 이 안에서 AI 모델을 학습시키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한국 규제 안에서만 기술을 개발했다면, 지금 수준의 AI 모델은 만들기 어려웠을 겁니다.”
리파이는 전략적으로 순서를 바꾸었다. 먼저 규제가 상대적으로 유연한 글로벌 환경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충분한 데이터와 실증 사례를 확보한 뒤 한국 시장에 진입한다. 미국 시장을 먼저 공략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서 대형 에너지·방산 조직과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강력한 검증이 된다. 한국에 들어올 때는 이미 글로벌 고객을 보유한 기술 파트너로 소개될 수 있다.
현지화 과정에서도 예상 밖의 장벽이 있었다. 리파이는 구글 클라우드 기반 아키텍처 위에서 운영되는데, 네이버 클라우드·네이버 지도 환경에 익숙한 한국 엔지니어를 찾는 일 자체가 과제였다. 또한 한국 기관들은 미국과 달리 구독형 SaaS보다 온프레미스(on‑premise) 방식을 선호했으며, 리파이는 이에 맞춰 솔루션 제공 구조를 확장했다.
이는 한국을 뒤로 미룬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뒤 더 강한 위치에서 한국과 협력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사진=리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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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안 됐다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KSGC) 프로그램은 리파이의 한국 진입 입구였다. KSGC는 해외 유망 창업 기업을 발굴해 국내 액셀러레이팅을 지원하고, 국내 창업 생태계에 정착을 돕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글로벌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콜라탓은 KSGC가 단순한 멘토링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점을 빠르게 알아챘다.
“한국 시장을 ‘문서로 이해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경험하며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초반, 그의 관심은 시장 진입과 제품 적합성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한국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규제·현지화·긴 의사결정 사이클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체감했다. “솔직히 한때는 포기할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전환점은 한국 파트너 레인버드지오(RainbirdGEO)의 위성 데이터 처리 전문가를 만나면서 찾아왔다. MIT와 NASA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고 현재 한국 기상청·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주요 기관과 협업 중인 교수와의 대화는 리파이의 한국 전략을 근본부터 바꾸어 놓았다.
“기존처럼 ‘우리가 무엇을 팔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시장에서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으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혼자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빠르게 제품을 파는 것보다 데이터·신뢰·제도권 파트너십 안에서의 포지셔닝이 훨씬 중요했다.
고객만이 증명한다
한국 시장을 조사하면서 콜라탓이 인상 깊었던 점은 오랜 기간 스텔스 모드에 머무르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었다. 기술이 충분히 완성되기 전까지는 세상에 보여주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는 이것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했다.
“실제 고객 피드백을 받기 전에 방향성을 잃거나 시장과 어긋날 위험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맞는지, 기술이 의미 있는지, 세상에 필요한지는 고객만이 판단합니다. 연구실 안에서가 아니라, 공개된 시장에서 부딪히며 검증받아야 합니다.”
리파이는 회사를 정식으로 설립하기도 전에 첫 매출을 냈다. 기술을 검증해주는 사람은 소비자라는 믿음의 결과였다.
“완벽한 시장 전략보다 강력한 기술 검증을 먼저 만드세요. 기술이 증명되면 나머지는 따라옵니다.”
지상에서 우주까지
올해 리파이는 본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하고, 2026 년 5월을 목표로 미국 시장에서 두 번째 투자 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단기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방산 시장과 미국 에너지 시장을 양대 성장 축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방위·안보 분야의 기술 수요도 급증하고, 첫 방산 계약도 체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위성 데이터를 분석·처리하는 미드스트림 영역을 넘어, 자체 위성 제작, 글로벌 지상국 운영, 위성 발사까지 아우르는 수직 통합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 비전이다.
“한국 국회에서 한국 위성 데이터가 어떻게 글로벌 시장에서 책임감 있고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직접 공유하는 자리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한국이 세계적인 우주 하드웨어를 만드는 나라를 넘어, 우주 데이터 상용화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일 것입니다.”
위성은 이미 충분히 올라가 있다. 부족한 건 하늘이 아니라 지상이다. 콜라탓은 그 빈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