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gle Computer: 초기 PC 클론의 흥망
출처: Hacker News
80년대 컴퓨터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1983년에 이글 컴퓨터만큼 높이 날아올랐던 기업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름 그대로인 이 회사는 한 달에 12,000대의 컴퓨터를 판매했으며, 재능 있는 CEO의 리더십 아래 매 분기마다 매출을 두 배로 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3년 6월 8일, IPO 당일에 이글은 CEO인 Dennis Barnhart를 페라리 사고로 잃게 됩니다. 이번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CEO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넘어, 이글 컴퓨터가 몰락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글 컴퓨터의 역사
이글은 우연히 시장에 진입한 CP/M 컴퓨터의 선두 생산업체였습니다. 이들은 일반용 컴퓨터로도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 Audio Visual Labs의 분파였죠. Audio Visual Labs는 1981년에 Commodore의 마케팅·영업 부사장이던 Dennis Barnhart를 영입했습니다. 곧 Audio Visual Labs는 이글을 별도 회사로 분리했고, Barnhart는 CEO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IBM 호환 컴퓨터는 시장을 선도했으며, 이 컴퓨터와 향후 모델들의 예상 판매량을 근거로 3,700만 달러 규모의 IPO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1986년 7월 30일, 설립 3년 조금 넘은 시점에 이글 컴퓨터는 파산했습니다.
페라리 사고와 관련된 흔한 이야기 외에도, 이 기업이 무너진 데에는 더 많은 요인이 있었습니다.
이글 컴퓨터, PC 클론 사업에 진출하다
이글 PC 2는 높은 IBM PC 호환성을 유지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과 매력적인 패키지를 제공했습니다. 판매도 좋았습니다. 1983년 전성기에는 한 달에 12,000대를 판매했죠.
IBM이 1981년에 IBM PC 5150을 출시했을 때, 이글은 CP/M에서 MS‑DOS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첫 번째 PC인 이글 1600은 100% 호환을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초기 PC들처럼, IBM보다 한 가지 정도는 더 잘하려고 했죠.
이글 1600은 호환성의 일관성 부족 때문에 엇갈린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글은 시장이 실제로는 100% 호환을 원한다는 점을 가장 먼저 깨달은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다른 기업들은 IBM을 능가하려다 보니 IBM이나 서로와 호환되지 않는 제품을 내놓았는데, 예를 들어 DEC Rainbow와 Tandy 2000이 있습니다.
이글 PC 2
이글은 곧 이글 PC 2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글 PC 2는 거의 100% IBM 호환 데스크톱 컴퓨터로, 책상 위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도 IBM PC처럼 동작했습니다. 팬이 없어서 IBM PC보다 조용했습니다.
또한 본체 아래에 키보드 보관함이 있어, 사용하지 않을 때는 키보드를 넣어 책상 공간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별도의 키보드 서랍을 구매할 필요가 없었죠.
이글 PC Spirit XL
이글은 뒤이어 출시될 모델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Compaq 포터블과 비슷한 휴대형 모델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글 PC II의 휴대형 버전으로, PC 2와 IBM PC와 동일한 4.77 MHz 8088 CPU를 탑재했지만, 내장된 흑백 모니터와 추가 확장 슬롯 하나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Spirit XL이 Compaq 포터블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히려 수리·업그레이드가 더 쉬웠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글 Turbo XL
이글은 또 다른 데스크톱 모델인 Turbo XL을 선보였습니다. 8 MHz 8086 CPU를 탑재해 IBM PC보다 두 배 빠른 속도를 제공하면서도 IBM 호환성을 유지했습니다. 이글 Turbo XL은 케이스에 하드웨어 터보 버튼을 탑재한 최초의 PC 중 하나였으며, 원래 IBM PC 속도에 맞춰야 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속도를 낮출 수 있었습니다.
세 모델 모두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키보드 레이아웃이 IBM과 약간 달라서 호불호가 갈렸지만, 1983년에 가성비 좋은 IBM 호환을 원한다면 이글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이글 컴퓨터 CEO Dennis Barnhart의 사망
이글 CEO Dennis Barnhart가 IPO 당일 빨간 페라리 308 GTS를 타고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별개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이글 컴퓨터의 운명은 1983년 6월 8일에 급변했습니다. 바로 이 날 이글은 최초 공개(IPO)를 신청했으며, 기업 가치는 CEO와 임원들을 순식간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부자로 만들었습니다. 주식 가치가 900만 달러에 달하던 CEO Dennis Barnhart는 그날 오후 차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사고 경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마다 사고 묘사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공통점은 Barnhart와 두 번째 인물인 요트 판매업체 사장 Sheldon Coughey가 이글 본사 근처에서 Barnhart의 페라리 308 GTS를 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 중 누가 운전했는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대부분의 보도는 운전자가 급커브를 과속으로 진입해 차의 제어를 잃고, 가드레일을 20피트 정도 끊어내며 공중으로 튀어올라 경사면을 넘어 뒤집힌 뒤, 협곡 바닥에 뒤집힌 채로 착지했다고 전합니다.
Barnhart는 사고로 사망했으며, 나이는 겨우 39세였습니다. Coughey는 위독한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아 회복했습니다. 2주 뒤, Barnhart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4%였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는 캘리포니아 주법이 정한 0.10%를 초과하는 수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누가 운전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1986년까지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Dennis Barnhart CEO 사고의 진실
몇몇 보도는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고에 대해 내부 정보를 가진 몇몇 인물들이 추가적인 세부 사항을 공개했으며, 이는 일반적인 일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Barnhart는 1982년식 포르쉐 911과 1983년식 페라리 308 GTS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IPO 약 두 달 전 페라리를 구입하고는 “EAGLE B”라는 맞춤 번호판을 부착했습니다. 이후 포르쉐를 판매하려 했고, 1983년 7월 8일 Coughey가 포르쉐를 보러 왔습니다. 차를 본 뒤 Barnhart는 그에게 페라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