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 시대, 디자이너는 정말 사라질 것인가?
Source: Byline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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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디자이너는 AI 혁명의 첫 번째 희생양으로 지목된 직업군이다. 미드저니가 등장하던 날, 사람들은 프롬프트 몇 줄로 그럴듯한 이미지를 뽑아내는 장면을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챗GPT가 지브리 분위기의 이미지를 생성해주니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지브리 스타일이 넘쳐났다.
“이제 디자이너는 필요 없다”는 말이 SNS를 떠돌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어도비 주가가 흔들렸고, 디자이너가 많이 활동하는 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 파이버의 주가는 5년 전 고점 대비 20분의 1로 급락했다. 디자인 의뢰 시장이 AI에 잠식될 것이라는 공포가 수치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디자인 작업은 미적 감각과 툴 활용 능력으로 결정되는 분야다. 무엇을 만들지 감각적으로 떠올리고, 도구를 활용해 실제로 구현해 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능력이다. 그런데 AI는 그 두 번째 능력을 누구에게나 공짜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포토샵을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리던 시절은 끝났다. AI 시대엔 원하는 이미지를 말로 설명하면 된다. 디자이너만이 열 수 있었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그럼 현장은 어떨까? 예언대로 디자이너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을까? 디자인 의뢰자들은 정말 AI로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을까? 공포는 현실이 됐을까, 아니면 아직 예언에 머물러 있을까?
스터닝은 이 질문에 가장 가까이 있는 국내 회사 중 하나다. 14년 전 ‘라우드소싱’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크라우드소싱 디자인 시장을 개척했고, 디자이너 교육 플랫폼 ‘노트폴리오’까지 운영하며 공급자와 수요자 양쪽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다. 국내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대부분 라우드소싱이나 노트폴리오를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AI 격변의 한가운데서 이 플랫폼이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찾아냈는지, 스터닝 김한선 CSO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스터닝의 라우드소싱은 어떤 서비스인가요?
디자인 결과물이 약 200만 개, 로고만 100만 개 이상 나온 크라우드소싱 기반 디자인 플랫폼이다. 디자인 의뢰자가 공모를 올리면 여러 디자이너가 각자의 시안을 제출하는 방식이며, 디자인을 잘 모르는 의뢰자도 다양한 시안을 비교해볼 수 있다.
주 고객은 소상공인·예비 창업자 등 디자인이 처음 필요한 분들로, 브랜드 로고, 홈페이지, 제품 포장 디자인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리플렛, 브로슈어, 포스터 같은 오프라인 인쇄물 디자인도 많이 의뢰받는다.
최근에는 디자인 이외에 ‘네이밍(작명)’ 서비스도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갈비탕 전문점을 열 때 상호명 아이디어를 여러 명에게 받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텍스트 기반 아이디어 영역으로 3~4년 전부터 확장했으며, 요즘은 참여자들이 GPT 등 AI를 활용해 제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AI 등장 이후 디자인 의뢰 건수에 변화가 있나요?
의뢰 건수가 줄어들고 있고, 평균 거래금액도 낮아지는 현상이 있다. 카테고리별 차이가 있는데, 광고 소재나 영상·그래픽 쪽은 AI 대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로고는 추상성과 완성도가 필요해 아직 AI가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은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의뢰 건수가 줄어드는 속도는 어떤가요? 급속도로 줄어드나요?
급격하지는 않다. 과거가 100이라면 현재는 90 정도다. AI로 직접 만들 수는 있지만 상업적으로 쓸 만한 품질을 내려면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AI 툴을 잘 다루거나 툴 자체가 고품질을 내야 하는데, 아직은 중간 단계다. 그래서 AI를 활용해 직접 해보다가 결국 의뢰하는 경우가 꽤 있다.
건수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평균 거래금액이다. 의뢰는 크게 줄지 않았지만 단가가 낮아지는 현상이 현저하다. 주 원인은 AI보다는 실물 경기 침체 탓이 크다. 소상공인들이 경기가 나쁘면 디자인에 쓸 돈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플랫폼에 가입한 디자이너 수에도 변화가 있나요?
국내 디자인 전공·종사자는 통계상 약 35만 명인데, 라우드소싱·노트폴리오 가입자를 합치면 이미 50만 명이라 거의 대부분이 가입한 상태다. 가입자 수 자체는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오히려 교육 플랫폼인 노트폴리오 쪽 유입은 확실히 늘고 있다.
디자인 의뢰가 줄었다면 회사 성장에 영향이 있을 거 같은데요. 다른 곳에서 성장 기회가 있나요?
디자인 이후, 즉 포스트 디자인 관점에서 ‘메이커스’라는 서비스를 2년 전부터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까지 확장한 서비스로, 예를 들어 화장품 박스·포장 디자인을 한 뒤 제작까지 지원한다. 의뢰 건수가 줄어도 제작·대행으로 연결해 매출을 늘릴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재작년 대비 작년에 약 30% 성장했으며, 손익도 거의 손익분기점에 근접하고 있다.
디자이너와 디자인 수요자를 이어주는 플랫폼 역할을 넘어 디자인 및 제작 에이전시 역할을 하게 되는 건가요?
그렇게 볼 수 있다. 공모전 대행, 패키지 제작(메이커스), 오프라인 시상식 운영 등 사람의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AI가 빠르게 대체하기 어려운 물리·오프라인 영역에서 당장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플랫폼을 AI와 결합할 방안을 병행해서 고민하는 구조다.
해외 유사 플랫폼들은 AI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크라우드소싱 프리랜서 플랫폼 파이버(Fiverr)는 5년 전 고점 대비 주가가 약 20분의 1로 떨어졌고, 어버크(Upwork)는 약 3분의 1로 하락했다. 주주들은 AI 대응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어버크는 AI를 플랫폼에 내재화해 단순 업무 의뢰가 아닌 AI 생성 서비스로 성격을 바꾸고 있다. 그래도 대기업 의뢰는 남는 방향으로 보인다. 우리도 플랫폼을 어떻게 진화시킬지 고민하고 있다.
디자인 플랫폼 이외에 교육 쪽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건 AI로 영향을 받나요?
노트폴리오라는 교육 플랫폼을 운영한다. 디자이너를 위한 강의 플랫폼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AI 관련 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AI가 포함된 강의는 완판율이 높다. 예를 들어 기존 캐릭터 강의에 AI 활용을 더한 강의가 더 인기가 있다. 교육 쪽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AI 시대에 디자이너가 필요 없어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디자인 교육 수요가 늘어나는 건 특이하네요.
우리나라에 디자이너 학과가 인구 대비 굉장히 많다. AI가 등장했어도 학과는 사라지지 않았고, 매해 디자인 전공 졸업생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에서 AI를 배우지 못한다.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AI를 배울 곳이 많지 않은데, 노트폴리오가 이런 수요를 잘 캐치하고 있다.
AI 교육 커리큘럼이 잡혀 있나요?
교육 과정은 이론보다는 과제 중심이다. ‘뭔가를 만들어라’가 기본 구조이며, 6주 단위 교육에 제작 워크숍·실무 워크숍이 포함된다. 디자인은 산업에 밀착된 분야라 이론이 빠르게 바뀌므로 현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을 강사로 섭외한다. 유명 연예기획사 등 현업 전문가와 협업하고, 홍익대·국민대 등 디자인 명문 대학 교수와도 협업한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결국 사라질까요?
장기적인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다. 기술 완성도가 올라가면 주니어부터 서서히 사라지다가 결국 시니어까지 영향을 받는 시장이 올 것이다. 다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다. ‘1년 안에 온다’는 느낌은 아니다. AI 발전 속도에 반비례해 디자인 의뢰 시장이 줄어들 거라고 보면 된다.
AI 시대에 디자이너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이걸 한 번 배우면 끝’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디자인은 감각과 툴을 다루는 능력의 결합인데, 툴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매번 다시 배워야 한다. 미드저니가 나오면 미드저니를 배우고, 새로운 AI 툴이 나오면 또 배우는 식이다. 과거에 크리에이티브 섹터가 가장 늦게 바뀐다고 했지만, 이제는 가장 빠르게 바뀌는 영역 중 하나다.
디자인 의뢰 물량이 줄고 단가가 낮아지면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의 수익성은 어떻게 되나요?
단가 하락의 주 원인은 AI보다는 실물 경기 침체로 소상공인들의 지불 의향 자체가 줄어든 측면이 크다. AI 때문에 가격을 낮추는 경우는 일부 모션 그래픽 등 제한된 영역에 한정된다. 한편 AI와 무관하게 국내 디자이너들이 파이버·어버크 같은 해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국내 디자이너 실력이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
스터닝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14년간 누적된 디자인 데이터다. 의뢰자의 카테고리·업종별 선호 키워드 같은 인풋 데이터와 실제 상업적으로 사용 가능한 수준의 디자인 결과물이라는 아웃풋 데이터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 GPT 같은 글로벌 AI가 학습한 데이터와 달리, 국내 고객이 선호하는 디자인의 톤 앤 매너는 해외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이 버티컬 로컬 데이터에 의미가 있다.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요? 플랫폼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AI에 활용하는 계획이 있나요?
내부적으로 아이디어는 있고 PoC(개념검증)를 준비하는 단계다. 오픈서베이가 설문 데이터를 학습해 SaaS형 인사이트 서비스로 만든 것처럼, 우리도 디자인 의뢰 데이터를 활용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 다만 솔루션이 될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될지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앞으로의 전략 방향을 정리해주신다면?
단기(12년)와 장기를 구분해 접근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AI가 빠르게 대체하기 어려운 오프라인·제작·공모전 대행 등 휴먼터치 영역에 집중해 안정성을 확보한다. 동시에 정부가 소상공인·예비창업자를 위해 매년 수백수천억을 늘리는 교육·사업비 지원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중요한 축이다. 장기적으로는 플랫폼을 AI 기반으로 어떻게 진화시킬지 고민하되, 섣불리 큰 변화를 주기보다 매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실험하는 방식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