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 펀블 퇴장에 샌드박스 회고
출처: 바이라인 네트워크

지난달 조각투자 플랫폼 펀블이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 수익증권 투자중개업 본인가 취득에 실패한 끝에 고객 자산 청산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는 2년 전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24년 3월, 금융위원회는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혁신금융서비스 300건 지정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일명 ‘금융규제 샌드박스’에 선정된 서비스가 300개를 돌파하자, 금융위가 이를 자랑스럽게 홍보하기 위한 행사였다. 당시 금융위원장은 “디지털 시대 변화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출시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발표된 보도자료에서 금융위는 혁신금융서비스 300건 지정을 자축하며 서비스의 혁신성, 금융소비자 편익, 금융산업 발전, 금융서비스 개선 측면에서 각각 우수 사례 3개씩을 선정해 발표했다. 금융위는 서비스 혁신성 부문에서 수익증권·투자계약증권 거래 플랫폼(STO)을 1위로, 금융산업 발전 부문에서는 2위로 선정했다. 요컨대, 샌드박스에 선정된 STO 플랫폼들이 매우 혁신적이며 금융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펀블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이후 약 5년간 부동산 조각투자(STO, 토큰증권 발행) 시장을 개척해 온 대표 사업자다. 하지만 투자중개업 인가를 위한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금융위가 자축한 지 불과 2년 남짓 흐른 현재, 샌드박스에 선정됐던 STO 플랫폼들은 매우 암울한 상황이다. 개인도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게 해 주던 혁신적 서비스였던 펀블은 문을 닫았고, 루센트블록 역시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심사에서 탈락하며 사업 존폐의 기로에 섰다.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을 개척했던 카사코리아는 자금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매각됐으며, 뮤직카우는 수익증권 투자중개업 인가를 준비 중이지만 사업 중단 시 자산 매각에 6~12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공시했다. 에이판다와 갤럭시아머니트리는 수년째 본 서비스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STO 기업들이 전멸에 가까운 상황이다.
스타트업은 원래 실패율이 높다.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업자가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금융당국이 직접 사업자를 지정해 기존 법령 적용을 면제해 주며, ‘이 사업을 제도권으로 이끌겠다’는 묵시적 약속을 담은 제도다. 실증 기간 동안 데이터를 쌓으면 정식 인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사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기대 위에서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결정했고, 인재들이 합류했으며, 수많은 투자자들이 조각투자 플랫폼에 자금을 맡겼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이들 기업이 샌드박스 실증 과정에서 소진한 모험자본은 1,500억 원을 넘어선다.
금융당국이 샌드박스를 지정하면서 실증 이후 제도화 로드맵을 책임지고 설계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조각투자 시장을 향한 금융당국의 법제화는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표류하고, 당국은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업자들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만 반복했다. 그 사이 기업들은 확장도, 철수도 하지 못한 채 불확실성 속에서 자금을 소진했다.
결말은 더욱 안타깝다. 최종적으로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를 받은 곳은 한국거래소가 참여한 KDX 컨소시엄과 넥스트레이드·뮤직카우 중심의 NXT 컨소시엄이다. 두 컨소시엄에는 제도권 금융사들이 핵심 파트너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규제 리스크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시장을 개척하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쌓으며, 기술·운영 노하우를 축적했다. 그 결과물 위에 제도권 금융사가 올라탄 형태다. “스타트업이 하던 사업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을 퇴출하고 기득권이 차지한 것”이라는 한 STO 업체 대표의 항변은 이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금융당국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다 할 수는 없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자본력과 내부통제 역량이 검증된 사업자에게 인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하다. 인가를 받지 못한 스타트업이 자기자본·사업계획·이해상충 방지 체계 요건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설명도 그 자체로는 납득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기준을 수년간의 실증 기간 동안 왜 미리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어떤 역량을 갖춰야 정식 인가를 받을 수 있는지, 인가 심사에서 제도권 금융사와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투명하게 로드맵을 공개했다면 스타트업들의 선택도 달랐을 것이다.
혁신금융서비스 제도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규제의 틈에서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도록 만든 이 제도의 취지는 유효하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증 이후의 경로를 책임 있게 설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타트업에게는 희망 고문에 불과하다.
샌드박스 졸업 기업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좌초한 원인은 기업 역량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법제화 지연과 불명확한 인가 기준이라는 정책적 실패 때문일까. 만약 후자라면 그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정책이 설계한 기대 위에서 발생한 실패라면, 그 책임의 일부는 정책 설계자에게도 있다.
글. 바이라인 네트워크
shimsky@byline.network

일명 심스키. 바이라인 네트워크 공동대표 기자. 테크 전문가 인터뷰와 칼럼을 주로 씁니다. 테크가 우리 삶에 미치는 긍정·부정적 영향을 설명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