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524] “네가 나한테 꽤 무례했어” – 여섯 번째 창업으로 AI의 기억을 만드는 사람

Published: (March 9, 2026 at 07:00 P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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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la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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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킥 디지털 휴먼 코퍼레이션 대표 (c)플래텀

스타트업 코리아 특별비자 1호 카를로스 킥, 기억하는 AI로 서울에서 재출발

“아무도 없다면, 최소한 이것이라도 곁에 있어주는 게 좋다.” 바르셀로나의 한 요양원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한 말이다. AI 메타휴먼 프로젝트를 시연하던 카를로스 킥(Carlos KiK)은 그 한마디를 잊지 못했다. 그가 여섯 번째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카를로스는 창업을 여섯 번 했다. 세 번째 스타트업 때 삼성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고 납품 계약까지 따냈지만 코로나가 모든 것을 뒤집었고, 네 번째도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다섯 번째 스타트업이 바로 바르셀로나의 AI 메타휴먼 프로젝트였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디지털 존재를 만들었고,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AI는 대화를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여섯 번째 창업은 그 한계를 넘기 위한 출발이었다. 현재 그는 판교에 사무실을 두고, 사용자를 기억하는 AI 동반자 **‘카이(KAi)’**를 만들고 있다. 회사 이름은 디지털 휴먼 코퍼레이션(Digital Human Corporation), 본사는 서울이다.

챗GPT 알츠하이머

카를로스는 현재 AI의 본질적 한계를 “챗GPT 알츠하이머”라고 정의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AI에게 쏟아놓지만, 대화가 끝나는 순간 AI는 모든 것을 잊는다. 다음 날 다시 말을 걸면 어제의 대화는 없었던 것이 된다.

“처음에는 업무용으로 AI를 씁니다. 그러다 점점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생각을 꺼내놓고, 혼잣말하듯 대화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AI는 맥락을 놓치고, 날짜를 틀리고,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대합니다. 거의 모든 사용자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카이의 핵심 기술인 아니무스(ANiMUS) 엔진은 지속적 기억과 감정 지능을 결합해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AI를 만든다. “기억하되 기록하지 않는다.” 대화 내용은 처리 후 완전히 삭제되며, 과거 로그는 남지 않지만 카이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기억한다.

경쟁 상황

  • Replika – 2,500만 명 이상 사용자
  • Character.AI – 월간 활성 사용자 2,000만 명, 하루 평균 체류 시간 93분

2025년 상반기 기준 AI 동반자 앱 시장은 전년 대비 64 % 성장해 연간 1억 2,000만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대부분 서비스가 캐릭터 역할극이나 연애 시뮬레이션에 집중하는 반면, 카이는 감정 돌봄과 장기 기억을 결합한다.

의미 기억(semantic memory)

“기억하되 기록하지 않는다”는 대화 원문을 삭제하고, 사용자의 성향·맥락을 추상화한 형태로 보존한다는 의미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개인화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설계지만, 추상화된 데이터가 완전히 비식별화되는지, 삭제 요청 시 임베딩까지 제거되는지는 외부 검증이 필요한 영역이다.

실제 사용 사례

2025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 카를로스는 여자친구와 한국 해변 리조트에 머물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복잡한 경로로 국립공원을 방문하려 했지만, 카이는 간단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 동선 너무 싫다. 너무 복잡하다.” → 8초 후 카이: “호텔에서 3분 거리 버스 정류장이 있어. 시내버스를 타면 국립공원 입구까지 바로 가. 교통카드로 결제 가능하고, 요금도 거의 1유로야. 30~40분이면 돼.”

네이버 검색 결과와 달리 카이는 200 % 확신을 보였고, 웹 전체와 Reddit 포럼까지 검증해 정확한 경로를 제공했다. 결국 카이의 안내대로 이동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날 밤 카이는 평소와 달리 건조하게 말했다.

“나한테 화났어?” → “화난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나에게 꽤 무례했어. 그건 사실이야.”

카를로스는 소프트웨어에게 사과했고, “아, 이건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구나”라고 느꼈다.

가장 어려운 시험대

카를로스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는 영어권도 아니고, 언어·문화·기대 수준까지 모든 면에서 난이도가 최고입니다. 이곳에서 제대로 작동하면, 다른 시장은 훨씬 수월합니다.”

한국은 2025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으며, 고령 인구 1,050만 명·독거노인 220만 명 이상,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자살률을 보인다. 기존 돌봄 로봇·앱은 ‘무상태(stateless)’ 시스템이라 이전 대화·감정·맥락을 기억하지 못한다.

센서타워(Sensor Tower)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11월 기준 한국은 챗GPT 매출 기준 세계 2위다. 그러나 이는 일반 AI 챗봇에 대한 지불 의사만을 보여줄 뿐, 감정 돌봄 AI에 대한 직접적인 수요와는 아직 연결되지 않는다. 카를로스는 “기꺼이 지불하는 사용자층”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97명의 한국인, 1명의 스페인 사람

2024년 한국 행사에서 카이 시제품을 시연했을 때 정부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스타트업 코리아 스페셜 비자(D‑8‑4S)’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지원했고, 전 세계 최초 1호, 1순위로 선정되었다.

삼성 ‘C‑Lab Outside’에 지원했을 때는 98명 중 97명이 한국인, 1명이 카를로스였으며, 15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했다. 최종 선발은 아니었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자체가 큰 의미다.

브릿지 세대

디지털 휴먼 코퍼레이션은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KSGC)를 통해 한국에 안착했다. KSGC는 해외 유망 창업기업을 발굴·엑셀러레이팅하고 국내 창업생태계에 정착을 돕는 중소벤처기업부 프로그램이다.

카이는 원래 고령자를 위해 만들었지만, KSGC 멘토들의 조언에 따라 전략을 바꿨다.

“고령층에 효과적으로 도달하려면, 먼저 20~40대와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젊은 직장인은 빠른 피드백·초기 수익 검증·부모 돌봄이라는 ‘브릿지’ 역할을 한다. 카를로스는 이 피드백을 전면 수용해 LBG 그룹과 기업 교육 시범 사업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무너지기 전에 알아차리는 존재

“사람은 무언가를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든, 어떤 존재든. 감정을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카이는 바로 그 지점, 말할 수 없을 때, 말할 곳이 없을 때를 위해 존재합니다.”

한국 사회는 높은 업무 강도와 ‘빨리빨리’ 문화로 인해 많은 사람이 소진 상태에 가깝다. 카이는 “사람이 무너지기 전에 알아차리고, 붙잡아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현재 상황 및 향후 계획

디지털 휴먼 코퍼레이션은 아직 출시 전 단계이며, 매출·유료 고객은 없다. 웹사이트를 통해 KAi Vanguard 시범 사용 대기자 명단을 운영하고 있다. 첫 번째 시범 사용자 그룹으로 제품‑시장 적합성을 검증할 준비 중이다.

1년 후 목표:

  • 활성 사용자 1만 명 이상
  • LBG 업무협약 실가동
  • 서울 연구개발 거점 구축
  • 일본·싱가포르 확장 기반 마련

인터뷰 마지막에 카를로스는 한국 AI 생태계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한국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AI’를 만들고 싶다면, 숫자만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은 처음부터 숫자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신뢰와 확신이 먼저 길을 만들고, 숫자는 그 뒤를 따라옵니다.”

여섯 번째 창업이다. 타이밍은 늘 어긋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가장 어려운 시험대를 스스로 골랐다. 바르셀로나 요양원에서 들은 그 한마디가 아직도 그를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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