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518] 우리는 왜 여전히 줄을 서는가
Source: Platum
두 번 한국을 선택한 사람 — 장태수 마임하임 대표

사진=마임하임
창원의 작은 창고에서 침대를 깔고 2년을 보낸 사람이 있다. 스물넷.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와 친환경 도료의 핵심 원료 제조 공장을 세운 그는, 2년 만에 매출 300억 원을 올렸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는 과정에서 파트너와의 갈등이 깊어졌고, 경영권 분쟁으로 번졌다. 소송은 2년을 끌었다. “다시는 스타트업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한국으로 왔다. 이번에는 세상의 모든 줄을 없애겠다는 생각을 들고.
창고 바닥의 침대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 출신의 전략가. 그러나 장태수 마임하임(Maimhaim Co.) 대표가 처음 회사를 세운 곳은 컨설팅 펌이 아니라 창원 공장의 창고였다.
엑싯 이후 그는 BCG로 갔다. 다양한 산업의 전략 프로젝트를 종단면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다음에는 투자자가 되어 여러 스타트업 곁에 머물렀다. 직접 회사를 일으키는 것과 바깥에서 그 회사를 지켜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직원들의 자식들도 언젠가 일하고 싶어 할 회사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던 그였다. 그 모든 시간이 쌓인 뒤, 결론은 하나였다.
“그 경험이 다 쌓이니, 오히려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더 단단하게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마침 누군가에게서 말을 들었다. 태그리스(tagless) 솔루션 분야를 제대로 이끌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사업을 저는 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줄 선 날의 질문
LA에서 자란 사람에게 서울 겨울 출퇴근 길의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은 다소 낯선 장면이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수십 명이 몸을 떨며 결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멈춰 서서 승객을 태우느라 몇 분씩 정차했다. 사람들이 올라타는 동안 흐름 전체가 멈춰 있었다.
“한국은 속도와 운영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라고 느꼈는데, 정작 결제 시스템은 여전히 물리적인 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꽂혔다. 우리는 왜 여전히 줄을 서야 하는가.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인은 평균 하루 3040분을 단순 대기에 쓴다. 1년으로 환산하면 약 810일이다. 우리는 매년 열흘 가까운 시간을 줄 서는 데 쓰고 있는 셈이다.
이 비효율은 대중교통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콘서트 입장도, 출석 체크도, 스타벅스 주문도, 일상의 거의 모든 흐름이 어딘가에서 한 번씩 멈춘다. 장 대표가 이 멈춤 자체를 없애겠다고 결심한 건 그 버스 정류장 앞에서였다.
폰이 곧 티켓
마임하임의 제품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폰을 꺼낼 필요가 없다. 소지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공식 명칭은 ‘컨텍스트 기반 Zero-UI’이다. IMU 센서 퓨전 기술로 사용자의 위치와 이동 패턴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별도의 조작 없이 자동으로 체크인·체크아웃·결제가 이어진다. 앱을 열거나 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 시스템이 사용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먼저 반응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정확도에 있다. 기존 태그 기반 시스템은 승객이 실제로 이동했는지, 단순히 플랫폼에 들어왔다 나간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같은 역에서 들어갔다 바로 나와도 요금이 부과되고, 카드 오류가 있어도 결제가 승인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마임하임은 사용자가 실제로 차량과 같은 속도로 이동했는지, 앉아 있었는지, 하차했는지를 행동 데이터로 판단한다. 추정 기반이 아니라 행동 기반이다. 운영자에게는 정확한 정산을, 이용자에게는 공정한 요금 부과를 제공한다.
장 대표는 이것을 ‘기다림 중심 사회’에서 ‘흐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라고 부른다. 궁극적으로는 공항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시스템이 먼저 “대한항공 체크인을 진행해 드릴까요?”라고 묻는 세계다. 앱을 열고 무언가를 실행할 필요 없이, 시스템이 맥락을 이해하고 한 단계 먼저 움직인다.

마임하임은 2025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데모데이에서 2위를 차지했다. 사진=마임하임
98%의 선택
마임하임이 한국을 첫 번째 시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규모가 아니었다. 환경이었다.
미국에서 LA에 모델을 만들어도 뉴욕까지 확장하려면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한다. 국토가 넓고 교통 시스템이 분절되어 있어, 하나의 표준을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면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 98% 이상, 온라인 거래의 70% 이상이 모바일 기반이며, 자동화 결제에 대한 거부감도 낮다. 대중교통 밀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며, 좁은 공간에 이용자가 집중되어 있다.
“저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동, 결제, 자동화‑가 가장 밀집되어 나타나는 환경이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결정적이었던 건 정책이었다. 한국은 2023년 세계 최초로 태그리스 교통 시스템을 상용화했고, 서울시와 정부를 중심으로 전국 표준화가 진행 중이다. 마임하임이 개발해 온 기술이 바로 그 방향과 맞닿아 있었다. 장 대표는 단순히 진출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을 본사 소재지로 선택했다. 2024년 8월, 한국 법인을 설립했다.
Hi‑Pass 이후
얼마 뒤 처음 한국 시장에 그렸던 그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KSGC)에 선정된 이후다. KSGC는 해외 유망 창업 기업을 발굴해 국내 액셀러레이팅을 지원하고 국내 창업생태계에 정착을 돕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글로벌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초기 B2B 전략
처음 한국 시장에 진입했을 때 전략은 B2B였다. 호텔과 골프장을 대상으로 자동 체크인·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델이었다. 통제된 환경에서 기술을 검증하기에 적합했고, 고객군도 명확했다. 현재도 경원건설의 남서울 CC에서 예약부터 체크인·체크아웃·결제까지 통합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OTA 플랫폼 트립비토즈(Tripbtoz)와는 MOU를 체결해 AI 여행 어시스턴트를 공동 개발 중이다.
방향 전환
KSGC 멘토들과 한국 파트너들과의 대화를 거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전통 산업의 보수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기술 검증은 가능해도 빠른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일상 전반에 적용 가능한 플랫폼 모델로 재설계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타깃 수정이 아니라, 저희가 바라보는 시장의 정의 자체를 바꾼 전환점이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는 ‘일상 속 Hi‑Pass’다. 하이패스는 차가 멈추지 않고 통과한다. 마임하임이 만들고자 하는 세계도 그렇다. 지하철, 버스, 택시, 자전거, 항공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고, 앱 하나로 입국부터 이동·숙박·출국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구조다. MaaS(Mobility as a Service)라는 공식 표현보다 훨씬 큰 그림이다.
경쟁·협력 구도
한국 대중교통 시장은 규제 기관, 운영 주체, 결제 시스템 제공자라는 축으로 분화되어 있다.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가진 대형 플레이어들이 주도하지만, 기술만으로는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구조다. 마임하임은 기존 사업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이동 데이터를 제공하는 협력 파트너로 포지셔닝했다. 경쟁이 치열해 보였던 시장에서 협력이 더 넓은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25년 12월 TIPS에 선정되며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졌고, 2026년 말까지 대중교통 분야 PoC를 마무리한다. 검증된 모델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창원 창고에서 시작해 소송과 BCG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온 사람이 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도전이다.
“이 회사가 그 변화를 만들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