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가 시작됐다: 야구가 창업을 닮은 이유

발행: (2026년 3월 6일 PM 03:42 GMT+9)
8 분 소요
원문: Pla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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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가 끝나면 토너먼트가 시작된다

2006년 3월, 첫 번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열렸다. 2라운드에서 한국과 미국이 맞붙었다. 당시 미국 선발 라인업의 연봉 총액은 879억 원이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켄 그리피 주니어, 데릭 지터—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다. 한국 선발 라인업의 연봉 총액은 45억 6천만 원. 미국의 5%에 불과했다. 경기 결과는 한국 7대 3 승리였다.

숫자만 보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토너먼트에서는 일어났다. 그 장면이 출발점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WBC가 다시 시작됐다. 오타니 쇼헤이 한 명의 연평균 몸값이 7000만 달러인 시대다. 연봉 격차는 더 벌어졌을지 몰라도, 토너먼트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이 결과만이 아니다. WBC라는 무대의 구조 자체—그리고 야구라는 스포츠의 본질—가 창업의 시간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최고도 열 번 중 일곱 번은 실패한다

여기서 야구가 품고 있는 역설이 드러난다. 토너먼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야구는 원래 실패가 기본값인 스포츠다.

타율 3할. 한때도, 지금도 슈퍼스타의 기준이다. 열 번 타석에 들어서 일곱 번 실패해도 최고라 불린다. 그러나 숫자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3타수 1안타, 4타수 1안타라 해도 그 한 번이 결정적인 홈런이거나 역전 타점이라면 그 선수는 팀의 핵심이 된다. 야구는 성공의 빈도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을 만들어냈는가를 기억하는 스포츠다. 실패가 기본값인 환경에서, 단 한 번의 임팩트가 모든 것을 바꾼다.

창업도 같은 구조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투자를 받은 창업기업의 7년 생존율은 72%다. 뒤집어 읽으면 투자를 받은 기업 열 곳 중 세 곳은 7년을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 한 번이 결정적인 엑시트로 이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창업 생태계가 실패한 창업자를 다시 불러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번 삼진을 당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다시 타석에 서는가를 본다.

그런데 야구에는 더 잔인한 진실이 있다.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아도, 야수 정면으로 향하면 그냥 아웃이다. 완벽한 스윙이 완벽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정교하게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 완벽하게 실행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을 수 있고, 방향이 조금 틀렸을 수 있다. 그래서 실패한 창업자를 단순히 실력 부족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동시에 이것은 창업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윙의 정확성—제품의 완성도, 팀의 실행력—은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타구의 방향—시장 타이밍, 거시 환경, 경쟁자의 등장—은 그렇지 않다. 최선의 스윙을 하되, 방향에 대한 집착이 다음 타석을 막아서는 안 된다.

토너먼트에서, 실패가 기본값인 채로 버티는 법

이 두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창업의 핵심 딜레마가 있다. 토너먼트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기 자체는 실패가 기본값이다.

답은 실패의 단위를 쪼개는 데 있다. 한 타석을 인생으로 받아들이지 않되, 지금 이 이닝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큰 단위의 실패를 허용하면서, 작은 단위에서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것이 토너먼트를 통과하는 팀의 방식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피벗은 패배가 아니다. 한 타석의 삼진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것, 타깃 고객을 재정의하는 것은 다음 타석을 위한 조정이지, 경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라운드, 지금 이 분기의 지표는 토너먼트의 이닝처럼 다루어야 한다. 장기적 실패 내성과 단기적 실행 집중,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장착한 창업자가 결국 살아남는다.

관중이 야구장을 떠나지 않는 이유

WBC 중계를 보면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단순히 승패 때문이 아니다. 연봉 총액 879억짜리 드림팀 앞에 45억짜리 라인업이 배트를 들고 서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다. 삼진을 당할 걸 알면서도 타석을 피하지 않는 선수, 일곱 번의 실패 끝에 터지는 역전 홈런, 토너먼트 마지막 이닝에서 흔들리지 않는 투수의 눈빛. 20년이 지나도 그 장면은 반복된다.

창업자도 그 타자다. 투자자도, 팀원도, 고객도 결국 그 장면을 보고 있다. 열 번 중 일곱 번 실패한다는 걸 알면서도 타석을 피하지 않는 사람. 완벽한 스윙을 했는데 야수 정면으로 갔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 타석을 준비하는 사람. 리그에서 단단해지고, 토너먼트에서 모든 것을 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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