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지도, 한국에서도 길 안내한다

발행: (2026년 2월 27일 오후 03:07 GMT+9)
9 분 소요
원문: Platum

Source: Platum

배경 및 결정

국토교통부는 27일 경기도 수원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측량 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이 신청한 1대 5000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하기로 의결했다.

1대 5000 축척 지도는 실제 거리 50 m를 지도 위 1 cm로 표현하는 고정밀 지도다. 현행 공간정보관리법상 1대 2만 5000보다 세밀한 지도를 국외로 반출하려면 국토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구글은 이 승인을 거듭 요청해왔고, 한국 정부는 안보상의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다. 한성대학교 정장훈 교수에 따르면 이 교착 상태는 약 18 년간 이어져 왔다. 정부가 처음으로 반출 문을 연 것이다.

다섯 가지 조건

협의체는 지난해 11월 구글에 기술적 세부사항 보완을 요청했고, 구글이 올해 2월 5일 제출한 보완신청서를 검토·심의한 끝에 이번 결정을 내렸다. 허가에는 다섯 가지 보안 조건이 붙었다.

  1. 영상 보안 처리 – 구글 맵스(Google Maps)와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글로벌 서비스에서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위성·항공사진은 보안 처리가 완료된 영상만 사용한다. 과거 시계열 영상과 스트리트뷰(Street View)에 대해서도 군사·보안시설 가림 처리가 의무화된다.
  2. 좌표 표시 제한과 반출 데이터 범위 한정 – 내비게이션·길찾기 서비스에 필요한 제한된 데이터만 반출이 허용되며, 등고선 등 안보적으로 민감한 데이터는 반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3. 국내 서버 활용 –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 서버에서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고, 정부 검토·확인을 거친 데이터만 반출할 수 있다.
  4. 보안사고 대응 체계 수립 – 구글은 보안사고 예방 및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한국 지도 전담관(Local Responsible Officer)을 국내에 상주시켜 정부와 상시 소통 채널을 유지한다.
  5. 조건 이행 관리 – 조건을 지속적·심각하게 불이행할 경우 허가가 중단 또는 회수될 수 있다.

기대되는 효과 – 관광 편의와 스타트업 확장성

이 결정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 영역은 외국인 관광이다. 현재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상당수는 자국에서 쓰던 구글 지도의 내비게이션·길찾기 기능이 한국에서 제한된다는 사실을 현지에 도착한 뒤에야 알게 된다. 기본적인 장소 검색은 가능하지만, 실시간 경로 안내를 받으려면 별도의 국내 지도 앱을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돼왔다.

여행·공간 기반 스타트업에도 의미가 크다. 여행 스타트업 데이트립(Datetrip) 의 윤석호 대표는 “국내 데이터만 제공되는 지도를 쓸 수밖에 없어 해외 시장을 겨냥하기 어려웠고, 글로벌 확장을 위해 구글 맵 API를 쓰더라도 한국 내 서비스와 연동이 안 돼 이중 개발을 해야 했다”며 “지도 데이터 개방으로 서울에서 개발한 서비스 로직을 수정 없이 뉴욕, 파리, 도쿄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고 기대했다.

구글이 보도자료와 함께 배포한 전문가 코멘트에서 연세대학교 홍순만 국가관리연구원장은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라, 공간 컴퓨팅, 스마트 물류, 확장현실(XR)을 떠받치는 전략적 디지털 인프라”라며 “플랫폼 산업 재편이 가속화되는 지금, 이번 결정은 한국 혁신 생태계를 글로벌 가치사슬에 연결하는 제도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은 쟁점 – 안보와 산업 형평성

기대만큼 변수도 뚜렷하다.

18 년간 반출이 거부된 핵심 이유는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정부가 등고선 제외, 군사시설 가림, 국내 서버 가공 등의 조건을 부과한 것은 이 우려에 대한 대응이다. 다만 이 조건들이 실제 운용 과정에서 얼마나 실효적으로 작동할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국내 제휴기업이 가공하고 정부가 검토한다”는 구조의 구체적 운용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장훈 교수는 “이번 결정은 안보 우려와 통상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 결과”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허용 여부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 및 국내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라고 지적했다.

국내 산업에 대한 영향도 핵심 변수다. 현재 한국의 내비게이션·지도 서비스 시장은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이 지배하고 있다. 구글 지도의 한국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경쟁 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다만 허가된 것은 제한된 범위의 데이터 반출이며, 실제 서비스 수준이 기존 사업자와 경쟁할 만큼 구현될지는 이행 과정에 달려 있다. 협의체는 구글에 국내 공간정보산업과 인공지능(AI) 등 연관 산업의 균형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 권고가 실질적 조건으로 구체화될지는 향후 협상에 달려 있다.

구글 대외협력 정책 부문 크리스 터너(Cris Turner) 부사장은 “구체적인 서비스 구현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정부 및 국내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허가가 의결됐을 뿐 서비스 출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오랜 교착이 풀렸다. 그러나 이 결정의 실질적 의미는 허가 자체보다 이행 과정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보안 조건의 실효성, 국내 산업과의 형평성, 데이터 접근 범위의 구체적 설계 – 쟁점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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