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의 함정 앞에서
출처: Platu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난하이(中南海)의 춘우재(春耦齋)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 황금홀(金色大厅) 연회장에 들어섰을 때, 시진핑이 꺼낸 키워드 중 하나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었다. 2,500년 전 그리스 역사가가 기록한 명제—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의 충돌은 필연인가. 시진핑은 같은 질문을 트럼프에게 돌렸다. “미국과 중국이 이 함정을 넘어설 수 있겠느냐”고.
트럼프의 답은 짧았다. “이번 방문은 굉장했다(incredible). 많은 성과가 있었고, 양국 모두에 좋은 무역 합의가 이뤄졌다.”
두 발언 사이의 거리가 눈에 띄었다.
중국이 원했던 프레임
시진핑은 만찬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장 하나에 두 나라의 슬로건을 담은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읽힐 수 있는 발언이었다.
중국과 미국, 유럽연합이 전 세계 GDP의 60%를 차지하는 지금, HSBC의 저스틴 펑 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회담을 “G2 권력 구도에 대한 결정적 시험”이라 불렀다.
미국과 중국은 첫날부터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성(strategic stability)”을 향후 3년간의 운영 프레임워크로 삼기로 합의했다. 잭 리 차이나 매크로 그룹 애널리스트는 “베이징은 트럼프의 거래적 관계 안정화 의지를 장기 운영 프레임워크로 전환하려 한다”며, 이 합의가 다음 미국 행정부에도 기준선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두 개의 협상 테이블
이번 방중에는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의제가 교차했다.
하나는 철저히 거래적인 것이었다. 팀 쿡(애플), 일론 머스크(테슬라), 래리 핑크(블랙록), 켈리 오텐버그(보잉) 등 미국 주요 대기업 CEO 10여 명이 트럼프 대표단에 동행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자리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트럼프의 전화 한 통에 막판 합류했다.
트럼프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보잉 항공기 200대를 주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잉이 기대했던 150대보다는 많지만, 업계에서 논의됐던 500대에는 크게 못 미쳤다.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로부터 중국 기업들에 H200 칩을 판매할 수 있다는 승인을 얻었다.
또 하나의 테이블에는 이란이 있었다. 트럼프가 “거대한 생명유지 장치에 달려 있다”고 표현할 만큼 불안정한 이란 휴전 상황이 회담 전반을 잠식했다.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란산 원유 최대 소비국인 중국에 직격탄이었다. 트럼프 방중에 앞서 이란 외교장관 아바스 아락치가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했다. 트럼프 방중을 앞두고 중국과 이란의 밀착이 재확인되는 장면이었다. 트럼프는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을 대표단에 이례적으로 포함시켰다. 무역·외교 중심의 국빈방문에 전쟁부 장관이 동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베이징 시민들이 본 것
베이징 2환로 인근 거리에서 CNN이 만난 시민들은 트럼프의 가장 절박한 요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통을 위한 중국의 중재.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일치했다. “중국은 항상 중립을 지켜왔다. 그들이 싸우고 싶다면, 그건 그들의 일이다. 우리와는 무관하다.” 미용 장비 업계에 종사하는 류씨의 말이었다. 그는 칩 수출 규제가 자신의 사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고도 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시민들조차 더 안정적인 미중 관계를 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자유로운 여행과 비즈니스, NBA 경기의 귀환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빈약한 성과”라는 진단
유로뉴스는 회담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큰 돌파구 없이, 관계를 안정화하고 강대국 경쟁의 추가 악화를 막는 데 그쳤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럽의회 의원 헬무트 브란트슈테터는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대만 문제가 상징적이었다. 시진핑은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며, 잘못 다루면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오 장관은 “미국의 대만 정책은 변함없다”고 즉각 선을 그었다. 대만은 이를 환영했다. 린자룽 외교부장은 루비오의 발언에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서로 원칙을 확인하고, 그 원칙을 존중하기로 했다. 유로뉴스가 “빈약한 성과”라고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다.
같은 평면에서
1972년 닉슨이 베이징에 왔을 때, 그 악수는 “세계를 바꾼 한 주”로 기록됐다. 냉전의 지형을 다시 그린 전략적 상상력이 있었다. 54년이 흘렀다. 이번 트럼프의 방문에 역사가들이 그런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하버드대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핵심 키워드는 안정화”라고 했다. 그는 『예정된 전쟁: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가』의 저자이기도 하다. 시진핑이 이번 회담에서 같은 질문을 다시 꺼낸 셈이었다.
보잉 200대, H200 칩, 3년짜리 전략적 안정 프레임워크. 트럼프는 이것을 “환상적인 무역 합의”라 불렀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의 실질적 의미를 돌파구보다는 안정화에서 찾았다.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의 몰락을 기록한 것은 전쟁이 일어난 다음이었다. 베이징이 그 함정을 화두로 꺼낸 2026년 5월의 의미는, 아마 더 긴 시간이 지나야 판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