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522] 공장에는 밤이 없다
Source: Platum
잠 못 드는 엔지니어가 만든 운영체제 — 레온 림 그라운드업.AI(GroundUp.AI) 대표

7개월 만에 서버 3,000대를 구축했다. 매일 밤 알람이 울렸다. 10명도 채 되지 않는 팀으로 글로벌 인프라를 지탱해야 했던 레온 림(Leon Lim)은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몰라 밤에도 편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 불면증이 그라운드업.AI(GroundUp.AI)를 만들었다.
밤새 울린 알람
레온 림이 이전 회사에서 맡은 임무는 단순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서버 인프라를 해외 여러 지역에 분산해 관리해야 했다. 서버는 0에서 3,000대로 불어났고, 다운타임은 거의 매일이었다.
“팀원들 모두가 지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그때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사람의 노력으로 계속 해결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더 스마트하고 자동화된 방식이 필요했다.
그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우리 자신의 가려움을 긁기 위해 만든 솔루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려움이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문제를 겪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것이 그라운드업.AI의 출발점이었다.
암세포를 제거한다
산업 현장에서 설비 하나가 멈추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수치보다 감각으로 먼저 온다. 생산 라인이 서고, 납기가 밀리고, 인력이 대기한다. 제조업, 해운, 핵심 인프라처럼 자산 집약적 산업에서는 아주 짧은 비가동 시간도 막대한 손실로 이어진다.
기존 솔루션들이 해온 일은 ‘알림’이었다. 단일 센서 기반의 임계치 경보, 진동 모니터링, 그리고 “이상이 감지됐습니다”라는 메시지. 하지만 현장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건 경보가 아니라 판단이다. 왜 고장이 났는지, 언제 또 날 것인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라운드업.AI가 내놓는 비유는 선명하다. “증상을 완화하는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에 가깝습니다.” 단순 고장 예측이 아니라 근본 원인(root cause) 분석과 설비 잔존 수명 예측까지 포함한 운영체제(OS)다. 분기 단위가 아닌 장기적 자산 관리를 가능하게 만드는 인텔리전스.
핵심 기술은 자체 개발 IoT 센서와 소리·진동·온도를 동시에 분석하는 멀티모달 AI, 그리고 에셋 라이브러리(Asset Library™)다. “5,000개 이상의 산업 이상 패턴이 학습돼 있습니다.” 새로운 설비에 배치되는 순간부터 즉시 의미 있는 분석이 가능하다. 기존 솔루션과 달리 이미 축적된 산업 지식을 그대로 가져온다.

OEM의 벽
한국 시장을 들여다보며 레온 림이 발견한 것은 두 가지였다. 강력한 로컬 솔루션들의 존재와 그 솔루션들이 공통으로 갖는 한계.
“한국에는 각 제조사(OEM)별로 매우 강력한 개별 솔루션들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런 솔루션들이 대부분 자사 장비에만 국한된 폐쇄형 구조라는 점입니다.” 현실의 공장은 하나의 브랜드 설비만 쓰지 않는다. 삼성, 현대, 그 외 다양한 제조사의 장비가 뒤섞여 돌아간다. 각 OEM별 솔루션을 따로 관리해야 한다면 전체 자산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애초에 불가능해진다.
설비 간 벽을 허무는 것이 그라운드업.AI의 전략적 공간이다. 특정 OEM에 종속되지 않는 중립적 데이터 브레인을 구축해, 어떤 제조사의 설비 데이터도 하나의 에셋 라이브러리로 통합 분석한다. 로컬 솔루션들이 규칙 기반(rule‑based) 단순 진동 모니터링에 머무는 사이, 그라운드업.AI는 여러 센서 데이터를 종합해 처방형(prescriptive) 해결책을 제시한다.
한국의 기준
그라운드업.AI를 한국 시장과 연결한 것이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KSGC)다. KSGC는 해외 유망 창업 기업을 발굴해 국내 액셀러레이팅을 지원하고 국내 창업생태계에 정착을 돕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글로벌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KSGC를 통해 레온 림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한국의 속도가 아니라 “한국의 기준”이었다. “단순한 마케팅 메시지보다, 실제 데이터와 결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장하는 모든 내용에는 근거와 증명이 뒤따라야 합니다.” 기술만 좋아서는 부족한 시장. 그는 이 점이 싱가포르 비즈니스 문화와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신뢰는 느리다
기술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웠나, 현장 엔지니어들이 AI의 판단을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웠나. 레온 림의 답은 명확했다. “의외일 수 있지만, 기술을 만드는 쪽이 오히려 더 명확합니다.”
목표가 분명하고 세계 수준의 인재들과 함께하면 해결할 수 있다. 반면 신뢰는 다르다. 그라운드업.AI의 고객 중에는 싱가포르 해군이 있다. 정부·군 조직에서 의사결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술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은 ‘AI가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사실보다, ‘이 AI가 우리 설비를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가’를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산업 현장의 AI는 사무용 AI와 다르다. 실제 기계를 다루고 사람의 안전과 직결된다.
현재 20곳 이상의 주요 기업에 솔루션을 공급 중이며, 코카콜라 보틀링 사우디아라비아(Coca‑Cola Bottling, Saudi Arabia), 싱가포르 해군, 하마드 국제공항(Hamad International Airport) 등 고신뢰 환경에서도 실제 운영 중이다. 2025년 4월에는 틴멘캐피탈(Tin Men Capital) 주도로 425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통합업체를 먼저
KSGC 프로그램이 알려준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의 순서였다.
처음에는 한국 고객을 직접 빠르게 확보하는 방식을 우선 고려했다. 하지만 시장 탐색과 멘토링 과정을 거치며 방향이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최종 고객에게 직접 접근하기보다 현지 시스템 통합업체(System Integrator)와의 협업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저희의 이상적인 Go‑To‑Market 전략은, 대형 시스템 통합업체 두 곳 정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 진출 방식으로 시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지 SI 파트너들이 그라운드업.AI의 솔루션을 기존 포트폴리오에 통합해 함께 제공하는 구조다. 한국 기업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신뢰, 현장 대응력, 장기 협업 구조를 동시에 확보한다.
1년 뒤의 성공은 단 하나의 이미지로 요약된다. “한국 산업 현장에서 그라운드업.AI가 설비 가동률을 위한 운영체제로 인식되는 것.” 그 이미지를 향해, 서울을 거점으로 한 현지 팀을 꾸려가고 있다.
밤마다 울리던 알람에서 시작된 회사는 이제 공장·항만·군 기지에서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밤에 잠을 잘 수 있느냐고 물었다. 레온 림은 웃었다. “공장에는 밤이 없으니까요. 대신 저희 AI가 깨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