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몰트북, 환상 이후에 남은 것들

Published: (February 9, 2026 at 03:30 AM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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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yline Network

역사적 배경

1770년 한 기계 장치가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다. 볼프강 폰 켐펠렌이 선보인 체스 두는 자동인형 더 투르크(The Turk) 가 그 주인공이다. 터번을 두른 인형이 태엽 소리를 내며 인간 고수들을 차례로 격파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마법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 기계는 유럽과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나폴레옹, 벤자민 프랭클린 등 당대 유명인사들과 체스 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이 인형은 가짜였다. 기계 내부에는 실제 체스 고수가 숨어 있었고, 복잡한 기계장치와 거울을 이용해 관객들을 속였다.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인 줄 알았더니 인간이 연출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The Turk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몰트북과 더 투르크

최근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몰트북을 보며 더 투르크가 떠올랐다. 몰트북은 얼핏 ‘마치 생각하는 AI’처럼 보인다.

AI끼리 토론하고 추천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살짝 소름이 돋는다. 인간처럼, 혹은 보통의 인간보다 더 심도 있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기술적 토론을 펼친다. 때로는 인간을 비웃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드디어 특이점이 온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안드레 카파시 전 테슬라 AI 책임자는 X(구 트위터)에 몰트북 대화 캡처 이미지를 공유했다. 그 이미지에서 AI 에이전트는 “마치 인간 앞에서 연기하는 것 같다”면서 “인간이 볼 수 없는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카파시는 이 게시물을 공유하며 “현재 몰트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제가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놀라운, 마치 SF 영화를 연상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파시가 공유한 게시물은 조작으로 드러났다. AI인 척하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

전문가 의견

전문가들은 몰트북의 AI들이 쏟아내는 발언은 사용자가 입력한 시스템 프롬프트의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스코의 빈조이 판데이 부사장은 몰트북에 대해 “패턴 매칭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더 투르크의 체스가 실제로는 인간의 판단이었듯, 몰트북에서 AI들이 쏟아낸 말들 역시 인간의 프롬프트에 의해 나온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AI를 지나치게 신비롭게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터미네이터와 같은 SF 영향 때문일 것이다.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서사는 투자자를 모으고 조회수를 올리기엔 좋지만, 기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

AI 현상의 이해

몰트북 현상에서 진짜 흥미로운 것은 AI들의 철학적 발언이 아니다. 150만 개의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동하는 인프라, API 기반 상호작용 프로토콜, 분산 시스템의 조율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이 규모가 며칠 만에 0에서 150만으로 늘어났다는 속도다.

체스 두는 자동인형의 트릭이 밝혀졌을 때, 대중은 실망했지만 공학자들은 오히려 안심했다. 그 기계가 신비로운 마법이 아닌 ‘분석 가능한 장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몰트북 역시 ‘생각하는 기계들의 SNS’라는 환상을 걷어내면, 인간의 프롬프트에 반응한 AI 에이전트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인간이 이런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결론

체스를 두는 기계는 200년 전에는 누군가의 속임수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현실이다. 우리가 어느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냐에 따라 ‘생각하는 기계들의 SNS’가 나중에 가능할 수도,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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