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스토리 #512] “왜 평생 내가 적응해야 하지?” – 13개국째 외국인으로 사는 창업자가 만드는 답
Source: Platum

한국에 4년째 사는 외국인 창업자가 배달의민족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이유
인도 출신의 라비 샨카르 판딧(Ravi Shankar Pandit)은 한국에서 배달의민족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4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데도 쿠팡도 거의 쓰지 못했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앱을 여는 순간부터 결제를 마칠 때까지 “이 서비스가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훌륭한 서비스가 이미 많다. 문제는 그 서비스들이 한국인만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통, 결제, 예약, 의료—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국 휴대폰 번호, 국내 은행 계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단기 방문객은 물론, 장기 체류 외국인에게도 벽이다.
라비가 만든 커넥트(Konnect) 는 이 벽을 허문다. 대전에 법인을 둔 이 회사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한국 서비스를 외국인이 실제로 ‘쓸 수 있게’ 만드는 플랫폼이다.
13번째 나라에서 터진 임계점
라비에게 한국은 13번째 거주 국가다. 인생 대부분을 해외에서 살았고, 어디를 가든 외국인이었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할 때마다 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나라의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 했다. 대부분의 서비스는 자국민을 위해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몇 년마다 나라를 옮기며, 매번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습니다. 적응하는 건 제 몫이었어요.”
그러다 한국에서 임계점이 왔다. 비자 사무소에서 외국인 전용 창구에 갔는데, 돌아온 답변은 “한국인을 데리고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느꼈습니다.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질문이 바뀌었다. “왜 평생 내가 적응해야만 하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부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는 것—그 ‘즉각적인 접근성’이 왜 보장되지 않는가.
이번이 다섯 번째 스타트업이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어느 때보다 확신이 크다.
“아무도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좋은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어요. 그건 앞으로 제가 직접 검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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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아니라, 재설계
커넥트의 접근 방식은 단순하다. 여권 하나로 인증하고,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검색·예약·결제를 끝낸다. 여러 개의 한국어 앱을 다운로드하거나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핵심은 번역이 아니다.
“기존 앱이 영어를 지원하더라도, 근본적인 화면 구성과 사용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외국인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서비스입니다.”
언어는 하나의 요소일 뿐, 해결책의 전부는 아니다. 외국인에게 중요한 건 언어뿐 아니라 문화, 환경, 그리고 로그인부터 서비스 이용까지의 전체 사용자 여정이다. 커넥트는 그 여정을 외국인의 시선에서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다.
이동 서비스
한국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면 티머니 카드를 사야 한다. 편의점을 찾고, 현금을 인출하거나 환전한 뒤 충전하고, 잔액이 떨어지면 다시 충전해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 과정이, 외국인에게는 첫 번째 장벽이다. 라비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커넥트가 이동 서비스를 첫 번째 핵심 기능으로 잡은 이유다.
현재 시범 운영 단계다. 출시 이후 전 세계 96개국에서 약 10만 명의 자연 유입이 발생했다. 초기 수요는 세 영역에 집중됐다.
- 이동·교통
- 비자 및 체류 정보
- 의료 서비스
의료 서비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중 상당수는 피부 시술, 헤어, 화장품 관련 클리닉을 찾는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어떤 클리닉이 있는지, 어떤 언어를 지원하는지, 실제 이용자 리뷰는 어떤지—인플루언서 게시물을 보고 따라가는 방식 외에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부족하다. 정보가 불투명하면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가격 부풀리기가 발생하기 쉽고, 실제로 최근 그런 사례가 문제가 되고 있다.
“투명성이 곧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가격과 서비스가 명확하게 공개되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과도한 가격 상승 문제는 계속 반복됩니다.”
정식 출시 시에는 130개 이상의 언어를 지원할 예정이다. 앱을 내려받으면 휴대폰 설정 언어를 자동 인식해 전체 서비스가 해당 언어로 제공된다.
The provided text is already in Korean, so no translation is needed.
배운 것, 그리고 발견한 것
가장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언어였다. 한국에서 회사를 운영한 지 약 18개월 동안 라비가 부딪힌 건 코드가 아니라 행정 절차와 문서 대부분이 한국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미리 알고 준비했더라면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혁신에 대한 개방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한국 시스템과 실제로 연동하려면—특히 인증, 결제,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는—여러 이해관계자와의 세심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처음 예상보다 훨씬 긴 일정이 요구됐어요.”
경쟁 환경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외국인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하려는 직접적인 경쟁자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동·결제·예약·인증 등 개별 기능별로는 이미 강력한 한국 서비스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핵심은 기능 경쟁이 아니라, 아직 연결되지 않은 조각들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개별 서비스는 이미 훌륭합니다. 다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여러 시스템을 직접 찾아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 간극이 커넥트가 풀고자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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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시작일 뿐입니다
왜 하필 한국인가. 라비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이 자신을 선택한 게 아니라 자신이 한국에 있는 것이 한국의 행운이라고 답한다. 자신감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깝다.
그 확신에는 숫자가 붙어 있다. 2025년 방한 외국인은 약 1,9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국내 체류 외국인은 27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라비가 보는 시장은 ‘지금 한국에 있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면서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전 세계의 잠재적 수요까지 포함한다. 공식 통계상 한류 팬은 약 2억 2,500만 명(2023년 한국국제교류재단 기준)이지만, 라비는 그보다 훨씬 넓은 간접 소비층을 겨냥하고 있다.
“전 세계를 위한 아이디어이고, 시작을 한국에서 했을 뿐입니다.”

외국인 창업자가 본 한국 생태계
라비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두 가지 바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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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전용 프로그램과 한국인 프로그램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것
4년간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인 대상 스타트업 대회에도 직접 참여했다. 신청서와 인터뷰가 한국어로 진행됐지만, 영어로 발표해 수상한 경험이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하는 인재와 심사위원이 이미 충분하다는 걸 체감했다.“같은 생태계 안에서 함께 경쟁하고 협업할 수 있다면, 출신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기준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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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문화의 변화
“한국에는 인재와 기술력이 이미 충분합니다. 투자자들이 조금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큰 비전에 베팅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10년이 아니라 3~4년 안에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저도 그 일부가 되고 싶습니다.”
1년 후의 성공
커넥트가 KSGC 프로그램 종료까지 반드시 증명하고 싶은 건 단 하나다. 외국인 사용자가 한국에서 커넥트를 통해 실제 거래를 완료할 수 있다는 것. 비록 제한된 규모일지라도, 반복적이고 규제에 부합하는 실사용이 발생한다면 접근 방식이 작동한다는 증거가 된다.
1년 후 성공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 월 수만 명의 활성 외국인 사용자
- 이동이나 필수 예약 같은 1~2개 핵심 서비스의 반복 이용
- 초기 검증을 넘어 장기 상업 협력으로 전환된 한국 파트너사
- 현지 기반의 소규모 운영팀
하지만 라비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건 숫자 너머에 있다.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아무것도 설계하지 않는 것 자체가 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책임 있는 관광’이란, 외국인이 많이 오는 나라가 아니라 외국인을 제대로 맞이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한국이 그 분야의 선도국이 되기를 바란다.
38년간 13개 나라에서 같은 벽에 부딪혀 온 사람이, 이전 어떤 사업보다 큰 확신을 갖고 시작한 회사다.
“지금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반드시 먼저 시작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저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