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를 쌓아두던 시대가 끝났다
Source: Platum

3차 상법 개정, 스타트업에는 무슨 의미인가
자사주는 오랫동안 기업의 ‘비밀 금고’였다. 주가가 떨어지면 방어벽이 되고, M&A 협상 테이블에선 교환 카드가 됐다. 경영권이 흔들릴 때는 우호 세력에게 넘겨 지배력을 보강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쌓아두면 쌓아둘수록 선택지가 늘어나는 구조였다.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차 상법 개정안은 그 구조를 바꾼다. 자사주를 취득하면 1년 안에 원칙적으로 소각해야 한다. 비밀 금고의 자물쇠가 사라지는 것이다.
대기업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도 이 변화의 바깥에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곳이 벤처·스타트업 현장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쥐고 있기’에서 ‘돌려주기’로
개정안의 핵심은 단순하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들이면 1년 내에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법 시행 후 새로 취득하는 자사주는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
- 법 시행 전에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는 시행일로부터 1년 6개월 이내에 소각 또는 처분해야 한다.
소각을 피할 수 있는 예외는 있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제도 실시,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M&A 과정에서 발생한 자사주 등이다. 단, 이 경우에도 이사 전원이 서명·날인한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을 작성해 매년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냥 쥐고 있는 것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자사주를 담보로 한 교환사채(EB) 발행도 금지된다. 합병·분할 시 자기주식에 신주를 배정하는 것도 막힌다. 위반하면 관련 이사에게 최대 5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왜 지금인가 – 3차 개정의 맥락
이번 개정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1차(2025년 7월), 2차(2025년 8월)에 이어 세 번째 상법 개정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고,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의무화하는 흐름 위에 3차가 올라탔다.
공통된 문제의식은 하나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소수 대주주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그 결과 주식 가치가 실질보다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고착됐다는 것이다. 자사주는 그 구조의 핵심 부품이었다. 대주주가 자사주를 쥐고, 필요할 때 우호 세력에게 넘겨 지배력을 강화하는 관행이 반복됐다. 3차 개정안은 그 관행에 제도적 제동을 건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맞섰다. 국내 기업들이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24시간 만에 필리버스터가 끝나고 법안은 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벤처업계가 우려하는 것
법안이 통과되자 벤처기업협회는 곧바로 입장문을 냈다. 협회는 “주주가치 제고와 기업 투명성 강화라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벤처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보완 입법을 간곡히 요청했다.
협회가 지적한 핵심은 다음과 같다. 대기업이 주로 주가 관리와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를 활용하는 반면, 벤처기업은 생존과 성장을 위해 자사주를 쓴다.
첫째, 공동창업자 이탈·초기 투자자 회수 등 지분 변동 상황
벤처 특유의 지분 변동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을 통한 원만한 정리가 필요하다. 소각이 의무화되면 이 과정에서 지분이 외부로 유출돼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
둘째, 핵심 인재 확보
현금 보상 여력이 낮은 벤처기업은 스톡옵션이나 성과조건부주식(RSU) 같은 주식 보상에 의존한다. 자사주 기반 스톡옵션은 신주 발행 없이 신속한 보상이 가능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도 피할 수 있다.
셋째, 유동성 확보
은행 대출·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벤처기업에게 미리 확보해 둔 자사주 처분은 경영 위기 시 사실상 유일한 긴급 유동성 수단이다.
넷째, 경영권 방어
대기업은 순환출자·계열사 지분 보유 등 다양한 방어 수단이 있지만, 벤처기업은 투자 유치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이 20~30% 수준까지 희석되는 경우가 많다. 협회는 자사주가 “실질적으로 유일한 경영 방어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협회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통해 벤처기업에 한해 자사주 소각 의무 예외 규정을 신설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타트업이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것들
개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되므로 시간이 촉박하다. 자사주를 보유 중인 스타트업이라면 다음을 점검해야 한다.
- 현재 보유한 자사주의 규모와 취득 경위를 파악한다.
- 스톡옵션 행사 등과 연결된 자사주라면 활용 계획을 재설계한다.
- 매년 주주총회에서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내부 절차를 마련한다.
- M&A·투자 유치 과정에서 자사주를 교환 수단으로 검토하던 경우, 대안적인 딜 구조를 고민한다.
규칙이 바뀌면 전략도 바뀐다
3차 상법 개정은 자사주 규정 하나만 바꾼 것이 아니다. 1·2·3차를 거치며 한국 자본시장의 작동 원리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사의 책임 범위가 넓어지고, 주주의 발언권이 세지고, 기업이 쌓아두던 완충 자산들이 주주에게 돌아가도록 설계가 바뀌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당장 자사주 운용을 고민할 상황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투자 계약서에 자사주 관련 조항이 있다면 지금 검토하는 것이 맞다. 성장 단계에 진입하고 상장을 준비할수록 이 규칙은 더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이제는 자사주를 어떻게 쓸 것인지보다, 소각을 전제로 지분 구조와 주주환원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시대다. 벤처기업협회가 보완 입법을 요청하는 사이에도 법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법 시행 후 새로 취득하는 자사주는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시행일로부터 1년 6개월 이내에 소각 또는 처분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항공 등)은 3년의 유예기간이 적용된다.